2015년 탁구 국가상비군 최종선발전

펜 홀더 전멸? 현재 충북 단양에서 치러지고 있는 2015 국가상비군 최종선발전 출전선수 명단에는 한국형 단면 펜 홀더 전형의 선수가 단 한 명도 없다. 선수 전원이 양면을 모두 사용하는 셰이크핸드 전형이다. 특히 남자는 수비수인 강동수(KGC인삼공사) 한 명을 빼면 전원이 앞뒷면 모두 평면러버를 부착한 올라운드 공격전형이다.

여자의 경우도 대부분의 선수들이 앞뒷면 모두에 평면러버를 부착하고 있다. 뒷면에 돌출러버를 붙이고 있는 이다솜(포스코에너지)과 최효주(삼성생명), 페인트러버를 부착한 김민경(삼성생명)은 이제 ‘희귀 전형’의 범주에 들어갈 정도다. 여자의 경우 출전한 20명 중에서 이수진(KDB대우증권), 윤선애(포스코에너지) 두 명이 수비수다.
 

▲ (단양=안성호 기자) 2015년 국가상비군 최종선발전이 단양 국민체육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국가대표 상비군 최종선발전에 출전한 선수들은 현재 한국탁구 최강자들이다. 한국탁구를 대표하는 남녀출전선수 43명 전원이 셰이크핸드다. 그 중에서 수비수 3명과 희귀전형 3명을 뺀다고 해도 37명이 앞뒷면 평면러버를 부착한 셰이크핸드 올라운드 전형이다. 한국탁구 특유의 ‘강력했던’ 펜 홀더는 이제 없다.

그나마 작년까지는 근근히 명맥을 유지했던 선수들이 있었다. 작년 국가상비군 최종선발전에 뛰었던 이정우(전 농심), 김태훈(삼성생명), 이은희(단양군청) 등이다. 하지만 올해 이정우와 이은희는 출전을 포기했고, 김태훈은 2차전에서 탈락했다.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갈수록 스피드가 강화되는 현대 탁구에서 백 코스에 확연한 약점을 노출하는 펜 홀더로는 ‘살아갈’ 방도를 찾기가 쉽지 않다. 정점에서 소위 말하는 ‘한 방’으로 득점을 노리던 패턴은, 정점보다 앞에서도 강력한 힘을 싣는 것이 가능해진 현대탁구의 기술 앞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사각’을 찾아다니던 펜 홀더 전진속공수들은 스피드가 특유의 무기가 되지 못하게 되자 스스로 ‘사각’을 더 많이 노출하고 있다.
 

▲ 세계를 제패한 한국탁구는 100% 펜 홀더였다.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유승민의 호쾌했던 드라이브. 월간탁구DB(ⓒ안성호).

하지만 아쉬운 것도 어쩔 수 없다. 세계를 제패한 한국탁구는 100% 펜 홀더였다. 유남규가 그랬고, 김택수가 그랬으며, 유승민이 그랬다. 세계대회 모든 종목 우승자 현정화는 펜 홀더 전진속공의 대명사였다. 화려한 전후스텝을 활용한 ‘돌아서는 탁구’는 한국탁구의 특징이자 매력이었다. 힘과 회전으로 대표되는 유럽탁구와 대비되며 독특한 ‘일가’를 이뤘었다. 빠르게 뒤로 이동하여 공간을 창출하고, 그 공간에서 강력한 포어핸드로 코스를 가르던 한국탁구의 화려함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다.

‘원흉’은 역시 중국이다. 애초부터 탁구대 위에서의 전진기술에 능했던 중국탁구는 이제 탁구대 위에서도 강력한 힘을 싣는 드라이브를 구사한다. 정점보다 앞에서 스피드를 극한까지 끌어올린다. 중국의 라이벌을 자처했던 유럽의 파워도 한국의 풋워크도 중국의 기술 앞에서 힘을 쓰지 못한다. 중국은 펜 홀더마저도 뒷면에 러버를 붙여 세계를 호령하고 있고, 단면 펜 홀더의 경쟁력은 ‘유승민’에서 끝났다. 세계 탁구는 지금 전형의 획일화, 단순화시대다.
 

▲ (단양=안성호 기자) 잘하는 셰이크핸드 선수를 육성해내는 것이 탁구계에 주어져있는 과제다. 최종선발전까지 진출한 청소년 유망주 안재현의 경기모습.

그러므로 한국의 모든 대표선수들이 셰이크핸드 전형이라는 사실을 탓할 수 없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대신 현 상황을 인정하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하는 것이 순리다. 잘하는 셰이크핸드 선수를 육성해내는 것이 탁구계에 주어져 있는 과제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이쯤에서 한 가지 덧붙여둬야 할 것이 있다. 과거 한국탁구의 펜 홀더 역시 일본, 또는 중국으로부터 도입됐지만 결국은 한국만의 독특한 특징을 창출했다는 것이다. 한국만의 화려한 펜 홀더로 세계를 제패했었다는 사실이다.

획일화에 가까운 한국탁구의 현재 흐름은 대세에 밀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단순한 흉내로만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가 거기 있다. 더 빠르고, 더 강한 것을 넘어설 수 있는 ‘플러스 알파’는 무엇이 있을까? 한국만의 셰이크핸드는 불가능할까? 어쩌면 그 답을 찾아내는 것이 현재 단양에서 시합에 몰두하고 있는, 현 시대 한국탁구를 대표하는 43명의 남녀선수들에게 주어져있는 책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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